
지난달 늦은 밤, 여의도의 한 호텔 지하 주차장이었습니다. 연매출 150억 대의 제조기업을 일군 대표님이 시동을 끈 제네시스 G90의 운전대를 툭툭 치며 담배를 물더군요.
“박 컨설턴트, 우리 회사 재무제표 봤지? 미처분이익잉여금이 40억이야. 부채비율도 낮고 아주 단단해. 나중에 은퇴할 때 퇴직금으로 한 번에 몰아 받거나, 자식 놈한테 주식 그냥 물려주면 끝나는 거 아닌가?”
어둠 속에서 타들어 가는 담뱃불을 보며 저는 쓴웃음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아주 차갑게 대답해 드렸습니다.
“대표님, 그 40억은 대표님의 자부심이 아니라, 회사의 숨통을 끊어놓을 ‘보이지 않는 감옥’입니다. 통장에 현금 40억, 그대로 있습니까?”
대표님은 침묵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 돈은 이미 5년 전에 산 공장 부지에 묻혀 있고, 3년 전에 들여온 기계 설비에 묶여 있으며, 창고에 쌓인 원자재 재고 속에 흩어져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하는 가장 위험하고 순진한 착각이 있습니다. ‘회사가 돈을 잘 벌어 잉여금을 차곡차곡 쌓아두었으니 안전하다’는 착각, 그리고 ‘세금 문제는 나중에 회사를 접거나 승계할 때 한꺼번에 처리하면 된다’는 게으른 낙관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과세관청은 대표님의 통장 잔고를 보지 않습니다. 종이 위에 찍힌 ‘숫자’만 봅니다. 통장에 현금이 단 1억 원도 없더라도, 재무제표에 이익잉여금이 40억 원 찍혀 있다면 국세청의 눈에 대표님의 회사는 ‘주당 가치가 수십 배로 뛴 초우량 기업’입니다.
이것은 마치 ‘구멍 난 댐’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물을 가득 품고 있어 웅장하고 풍요로워 보이지만, 수압을 이기지 못해 보이지 않는 안쪽부터 균열이 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만에 하나 대표님 신상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기거나 가업을 승계하려 할 때,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주식 가치 때문에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라는 거대한 물폭탄이 유족과 회사를 그대로 집어삼킵니다. 댐이 터지면 물만 빠지는 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쓸려나가는 법입니다.
이 댐의 수위를 낮추는 일, 즉 잉여금을 합법적이고 질서정연하게 빼내는 ‘조절 방류’는 하루아침에 벼락치기로 되지 않습니다. 한 번에 빼내려 들면 최고 49.5%의 소득세율이라는 칼날이 대표님의 목을 겨눕니다.
배당의 정밀한 설계, 자사주 매입 및 이익소각, 대표이사의 특허권을 활용한 자본화, 그리고 현실에 맞게 개정된 정관을 기반으로 한 퇴직금 플랜 등 여러 개의 안전한 배수구를 동시에 열어야 합니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정교한 세법의 틀 안에서 합법적으로 회사의 잉여금을 대표님의 ‘개인 자산’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오늘 밤, 귀가하시기 전에 대표님 스스로에게 딱 세 가지만 물어보십시오.
1. 우리 회사 재무제표에 쌓인 수십억 원의 이익잉여금 중, 대표님이 당장 개인 통장으로 인출할 수 있는 진짜 ‘현금’은 얼마입니까?
2. 만약 내일 당장 예기치 못한 유고가 발생한다면, 유족들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납부해야 할 수십억 대 상속세를 낼 ‘세금 재원’이 마련되어 있습니까?
3.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하면 되겠지”라며 덮어둔 그 게으름이, 사실은 가족과 회사를 파멸로 이끌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진짜 실력 있는 경영자는 돈을 버는 법뿐만 아니라, 번 돈을 온전히 지키는 법까지 완성하는 사람입니다. 숫자의 감옥에 갇혀 질식할 것인지, 안전한 출구를 열 것인지는 대표님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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