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통장의 30억, 축복이 아닌 감옥입니다

A group of colleagues celebrating with raised hands in a bright office setting.

“박 컨설턴트, 우리 회사는 부채도 없고 미처분이익잉여금만 40억이 넘어요. 이만하면 아주 탄탄하지 않습니까?”

며칠 전, 여의도의 한 일식집 지하 주차장에서 배웅을 나오신 연매출 80억 제조업 대표님이 시동을 켜며 건넨 말이었습니다. 차 문을 닫으려는 대표님의 손을 붙잡고, 저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 지금 대표님은 불발탄 위에 고급 세단을 주차해 두신 겁니다. 시동을 걸 때가 아니라 뇌관을 해체할 때입니다.”

많은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배당하면 세금만 많이 나오니 회사에 쌓아두는 게 이득이다’, ‘나중에 회사를 물려주거나 정리할 때 한꺼번에 처리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단언컨대, 미처분이익잉여금은 대표님의 땀과 눈물로 쌓아 올린 자산이 맞지만, 국세청의 시선에서는 ‘언제든 가장 높은 세율로 거둬들일 준비가 된 완벽한 먹잇감’일 뿐입니다.

잉여금이 쌓일수록 비상장주식의 가치는 비이성적으로 치솟습니다. 주당 5,000원짜리 주식이 장부상 10만 원, 20만 원으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가치가 치솟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상속이나 증여가 발생했을 때 터집니다. 최고세율 50%, 최대주주 할증까지 붙으면 60%에 달하는 세금 폭탄이 떨어집니다. 더 잔인한 현실은, 장부상 40억의 잉여금이 있어도 실제 통장엔 공장 부지와 기계, 재고자산에 묶여 현금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회사를 살리기 위해 대표님의 집을 팔거나, 헐값에 회사를 넘겨야 하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은 수위 조절 장치가 고장 난 ‘거대한 댐’과 같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며 “우리 저수지는 물이 풍족하다”고 자위하는 꼴입니다. 댐의 벽면에는 이미 미세한 균열이 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한 번 무너지면 대표님 일가 전체를 집어삼킵니다.

해결책은 댐이 터지기 전에 정교하게 ‘배수로’를 파내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배당을 몰아쳐서 종합소득세 폭탄을 맞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표이사의 퇴직금 규정 정비, 직무발명보상제도, 자사주 매입 및 이익소각, 배우자 증여공제를 활용한 자본거래 등 합법적이면서도 출구 전략에 최적화된 복합 통로를 설계해야 합니다. 수년간에 걸쳐 물을 안전한 곳으로 빼내는 엔지니어링 작업이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대표님, 냉정하게 자문해 보십시오.

1. 지금 당장 대표님 신변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기면, 자녀가 그 주식 상속세를 ‘현금’으로 납부할 수 있습니까?
2. 재무제표에 찍힌 수십억의 잉여금 중, 오늘 당장 인출할 수 있는 진짜 ‘현금’은 몇 퍼센트나 됩니까?
3. 세무서가 대표님보다 회사의 가치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하며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호황일 때 위기를 준비하지 않는 기업은, 불황이 왔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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