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의 한 호텔 지하 주차장. 미팅을 마치고 고급 세단의 트렁크를 닫던 연매출 80억 제조업 대표님이 담배를 한 대 물며 제게 툭 던진 한마디였습니다.
“박 팀장, 통장에 10억 정도 가지급금 잡혀 있는 거, 솔직히 다 내 회사 키우다 쓴 돈이잖아? 나중에 회사 좀 더 키워서 한꺼번에 정리하면 되지, 국세청이 설마 나를 털겠어?”
저는 그 자리에서 차분하게, 그러나 아주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 국세청은 대표님의 피땀 어린 창업 스토리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보는 건 오직 하나, 대표님이 회사 돈을 무단으로 빼 쓴 ‘이자놀이 대상’이라는 사실뿐입니다.”
대표님들이 가장 흔하게 빠지는 치명적인 착각이 있습니다. ‘회사가 내 것이니 회사 돈도 내 돈이고, 가지급금은 나중에 한 번에 털어내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뼈아픈 진실을 말씀드릴까요? 가지급금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는 먼지가 아닙니다. 가만히 둘수록 스스로 덩치를 불려 회사의 숨통을 조여오는 ‘주머니 속 시한폭탄’입니다.
과세당국의 눈에 가지급금은 합법적인 대여금이 아닙니다. 매년 4.6%의 인정이자를 꼬박꼬박 물리고, 갚지 못한 이자는 고스란히 대표님의 상여(소득)로 처분되어 종합소득세 폭탄으로 돌아옵니다. 게다가 법인이 낸 이자비용조차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해 법인세가 이중으로 늘어납니다. 정작 사업이 어려워져 대출이라도 받으려 치면, 은행은 재무제표의 가지급금을 보고 “대표가 회사 돈 빼돌리는 기업”이라 낙인찍으며 신용등급을 강등시킵니다.
가지급금은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댐에 생긴 ‘미세한 균열’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나중에 메우면 되지”라며 무시합니다. 그러나 수압은 계속 차오르고, 균열은 눈에 보이지 않게 내부를 갉아먹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세무조사라는 폭우가 쏟아지는 순간, 댐 전체가 단숨에 터져 20년 동안 밤낮없이 일군 회사를 통째로 수장시켜 버립니다.
댐의 균열을 막으려면 아무 시멘트나 들이붓는 땜질 처방으로는 안 됩니다. 무턱대고 급여를 올리거나 섣부른 배당을 실행했다간 최고 49.5%의 소득세율이라는 또 다른 역류를 맞게 됩니다.
합법적이고 정교한 배수로를 터주어야 합니다. 대표님이 보유한 특허권(직무발명보상제도), 자사주 매입 및 이익소각, 차등배당, 퇴직금 정산 등 회사의 정관과 자본구조를 정밀하게 재설계하여 세금 누수를 최소화하면서 가지급금을 합법적으로 지워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회계 처리가 아니라, 국세청과의 고도의 수싸움이자 정밀한 외과 수술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대표님께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대표님 회사의 재무제표 속 가지급금이 지금 국세청 전산망(NTIS)에서 어떤 색깔의 경고등으로 깜빡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둘째, “나중에 한꺼번에 갚겠다”던 그 ‘나중’이 왔을 때, 눈덩이처럼 불어난 세금을 감당할 현금이 대표님 개인 통장에 준비되어 있습니까?
셋째, 대표님이 청춘을 바쳐 일군 기업이, 고작 잘못 관리된 회계 장부의 숫자 찌꺼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꼴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댐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균열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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