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팀장, 우리 회사 올해도 잉여금이 10억 넘게 쌓였어. 통장에 돈은 좀 빠듯해도 장부 보면 아주 든든해. 탄탄하다는 증거 아니겠어?”
강남의 한 일식집, 기분 좋게 사케 잔을 부딪치며 건네신 어느 제조기업 대표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연매출 80억, 15년간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의 수장다운 자부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요. 저는 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되물었습니다.
“대표님, 그 든든한 숫자가 대표님 자녀분의 숨통을 조이는 밧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불쾌함 반, 당혹감 반이 섞인 대표님의 눈빛을 마주하며 저는 뼈아픈 진실을 꺼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착각의 늪: 장부의 숫자는 대표님의 돈이 아닙니다]**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가장 흔하게 빠지는 착각이 있습니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이 많이 쌓일수록 회사가 안전하고, 나중에 은퇴할 때 한꺼번에 정리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 장부상 수십억의 잉여금, 지금 통장에 현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공장 기계로, 재고자산으로, 외상매출금으로 다 흩어져 있습니다. 정작 꺼내 쓸 현금은 없는데 장부상의 숫자만 비대해진 상태,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민낯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국세청의 시선입니다. 국세청은 대표님 통장에 현금이 있든 없든 관심이 없습니다. 장부에 찍힌 그 잉여금을 근거로 비상장주식 가치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립니다. 1만 원짜리 주식이 10만 원, 20만 원짜리가 되는 순간, 대표님의 지분은 ‘세금 폭탄의 뇌관’으로 변합니다.
만약 내일 당장 불의의 사고로 상속이 발생하거나, 지분을 자녀에게 넘기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최고 세율 50%, 최대주주 할증까지 붙으면 60%입니다. 통장에 현금도 없는데, 수십억의 세금을 주식으로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회사를 헐값에 매각하거나 대출을 받아 세금을 내느라 기업이 공중분해 되는 비극,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문이 닫힌 댐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은 ‘물’과 같습니다. 적당히 고여 있어야 가뭄을 버티지만, 방류할 통로가 없는 ‘구멍 막힌 댐’은 언젠가 쏟아지는 폭우에 터져버려 마을 전체를 수몰시킵니다.
지금 대표님이 하셔야 할 일은 댐에 물을 더 가두는 자랑질이 아닙니다. 안전하게 물을 빼낼 ‘배수구’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임원 퇴직금 규정 정비를 통한 합법적 퇴직소득 활용, 배당 정책의 다변화, 자사주 매입 및 이익소각, 대표이사가 보유한 특허권 자본화 등 회사의 체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주식 가치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잉여금을 합법적으로 대표님의 개인 자산화하는 루트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무사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기장 세무사의 역할은 지난 1년의 세금을 ‘기록’하는 것이지, 10년 뒤 대표님의 가업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출구’를 짜주는 것이 아닙니다.
**[냉정하게 자문해 보십시오]**
1. 지금 당장 대표님의 지분을 자녀에게 증여한다면, 감당해야 할 세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계산서를 받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2. 재무제표에 찍힌 수십억의 잉여금 중, 비상사태 시 세금 납부에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진짜 현금’은 몇 %나 됩니까?
3. 세무 대리인이 매년 “문제없습니다”라고 한 말이, ‘세금이 안 나온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히 ‘신고만 제때 끝냈다’는 뜻임을 알고 계십니까?
미루는 시간만큼 주식 가치는 올라가고, 국세청의 지분은 커져만 갑니다. 결단하지 않는 오너의 회사는 결국 세금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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